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트남 공화국 (문단 편집) === [[대만]]과의 관계 === || [[파일:27933884941_3367e297a7_b.jpg|width=250]] || || 1960년 1월 22일, [[타이베이]]를 방문한 [[응오딘지엠]] 총통(좌측)과 응오딘지엠을 맞는 [[장제스]] 총통(우측) || 베트남 공화국과 대만과도 꽤 좋은 사이를 유지했다. 베트남 공화국은 [[중국]]을 인정하지 않았고, 1955년 대만과 수교했다. 대만 역시 북베트남을 인정하지 않았다. 각국의 수도인 [[사이공]]과 [[타이베이]]는 자매결연을 맺는가 한편, 남베트남의 학생들이 대만으로 유학을 가기도 하는 등 사이가 아예 돈득한 수준이었다. 당연히 대만은 [[베트남 전쟁]] 당시 남베트남을 지원까지 해줬고[* 파병까지 하려 했으나 남베트남 측이 '''강경하게 반대했다고 한다.''' 이는 아무리 베트남 공화국과 대만이 같은 반공 진영에 속해 있어도 역사적으로 베트남과 중국의 국민감정이 좋지 못했기 때문.(왜 '중국'이 나오는지는 [[양안관계]] 참조) 다만 나중에 대만의 제안을 받아들여 소수의 [[대만군]]이 참전하였는데, 운전병 등이 소수 파병되었다. 이들은 '''개구리 병사'''라는 이름으로 불렸다.], 1975년 남베트남이 패망하기 직전 [[응우옌반티에우]] 총통이 대만으로 망명하기도 했다. 다만 남베트남 입장에서 따지고 보면 대만에게 "배신"당한 적이 없지는 않다. 1974년 파라셀 군도 해전 때 대만 해군이 [[장제스]]의 결정으로 [[파라셀 군도]]로 증원되어 대만 해협을 통과하는 중국 함선들을 가로막기는커녕 무사히 통과시켜 준 것. 중화주의자였던 장제스는 중국이 파라셀 군도를 장악하면 나중에 양안이 통일된 이후의 영토가 넓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